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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루소의 에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작성자 아이미소연구소 작성일 2008-01-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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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에밀』

육에서 ‘연령별 차이’에 대한 고려가 차지하는 비중은 「「에밀」」의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루소의 논의는 많은 미비점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이론의 발전에 대한 루소의 공헌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에 해당한다. 각각의 연령은 그 자체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원리에서 출발하여, 루소는 전 교육기간을 네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에 맞는 교육 방안을 처방하기 위한 기초로서 그 각각의 주요 특징들을 규정하고 있다. 아동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연속적인 단계를 서로 구분하는 데 있어서 루소는 두 가지 원칙을 따르고 있다. 즉, 한편으로 루소는 개체로서의 인간의 성장과 루소 자신이 보는 종족의 역사 사이에 일종의 대응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또 한편으로는 루소는, 아동에서 성인에 이르는 정신적 발달은 아동기의 지적 수동성이 정신 능력의 연속적인 성숙에 의하여 성인의 지적 능동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루소가 구분한 네 시기 중에서 첫째 시기는 출생시부터 2세에 이르는 유아기이다. 이단계의 아동은 모든 면에서 동물들과 다름없다. 아동은 미분화된 감정의 상태에 있으며 출생 이전과 거의 다름없이 자아를 의식하지 못한다. 둘째 시기는 2세에서 12세에 이르는 아동기이다. 이제 아동은 야만인의 수준에 다다랐다. 아동의 마음은 감각에 지배되어 있으며 본격적인 추리력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아동은 도덕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그가 따르는 법은 오직 신체적 필요라는 법이다. 셋째 시기는 12세에서 15세에 이르는 청소년기이다. 소년은 이제 성인의 삶의 문턱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로빈슨 크루소와 같이 자급자족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체력이 왕성해짐과 더불어 지력이 출현하게 되고, 이에 따라 아동은 자신의 행위를 장차의 결과에 비추어 조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양심은 아직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 있으며 그의 행동을 유발하는 유일한 동기는 개인적 유용성이다. 넷째 시기는 15세에서 결혼 적령기인 25세에 이른 청년기이다. 성 기능이 눈을 뜨면서 이제 청년은 제 2의 탄생기를 겪고 그에게 진정한 사회적 삶이 시작된다. 지력과 감각 이외에 영혼이 덧붙여지고 미와 선과 진이 바로 청년 자신의 가치로 들어앉는다. 양심이 삶을 지배하며 덕이라는 것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소의 교육 방안은 그의 연령단계 구분의 원리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것으로, 그것과 동일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가장 심오한 진리는 청년기의 변화가 교육에서 차지하는 근본적인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에 있으며 그것에 들어있는 가장 심각한 오류는 이 변화의 영향을 지나치게 과장했다는 점, 그리하여 아동기를 그 이후의 단계와 엄격하게 분리하면서 아동의 도덕적, 지적 능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에 있다. 루소의 교육 방안을 개략적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교육은 태어날 때부터 아동의 신체적 활동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신체적 사회적 반응으로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 교육자가 따라야 할 으뜸가는 규칙은 너무 방치하거나 너무 보호함으로써 경험에서 오는 가르침을 훼손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최초의 2년 동안, 먹고 말하고 걷는 것 등의 초보적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적 모방과 아동 자신의 노력이상의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다.
㈏ 열 두 살까지의 아동기에 있어서 교육은 주로 소극적인 성격을 띤 것이어야 한다. 즉, 이 시기의 교육은 ‘덕이나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심성을 악덕으로부터, 지력을 오류로부터 보존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시기의 소년은 도덕적 사실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도덕적 관념을 신체적 현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경우(예컨데 “분노”를 “열병”으로 설명하는 것), 또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결과를 직접 당하도록 함으로써 도덕적 관념을 알려 줄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덕성을 가르치려는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학교의 교과를 가르치는 것은 무익하다. 언어, 지리, 역사는 물론, 심지어 우화조차도 이 단계의 아동으로서는 미칠 수 없는 삶의 사실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만약 이런 것들을 가르친다면 아동은 그것을 공허한 언어로만 배울 뿐이며, 이것은 외양만의 지식이 되어 아동의 마음에 혼란과 왜곡을 가져다준다. 이시기의 아동에게 알맞은 직접적, 적극적 교육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신체적 활동을 통한 마음의 훈련이다. ‘사고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지력의 도구인 팔다리와 감각과 그 밖의 신체 기관을 움직여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 중에서도 이 시기에는 감각 훈련이 특히 중요하다. ‘감각은 정신 능력 중에서 가장 먼저 형성되고 완성되는 것이며 따라서 가장 먼저 개발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감각을 훈련하는 단순히 감각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감각을 사용하여 판단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예컨대 시각은 거리를 측정하고 추측하는 연습을 해 보고 실물을 그려보고 측량을 하고 공놀이를 해 봄으로써 완성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아동이 하는 일체의 학습은 놀이를 통하여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하며 아동 자신의 열의 외에는 어떠한 강제도 있어서는 안된다.
㈐ 아동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는 호기심과 함께 결과에 대한 예견능력이 발달하며 아동은 처음으로 과학 공부를 시작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과한 공부를 시작 하는데는 두개의 출발점이 있다. 하나는 아동의 주위에 있는 세계에 대한 그의 관심이요(지리), 또 하나는 태양에 대한 그의 관심이며(천문학), 이 두 가지 출발점에서 시작된 과학 공부는 나중에 물리학의 기본 원리로 수렴된다. 과학 공부의 목적은 지식을 제공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획득하는 취미와 능력을 길러주는 데에 있으며 그 방법은 아동 자신이 직접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동은 과학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이와 병행하여 아동은 사회성 훈련의 일환으로 목공술을 배우면서 수공 능력으로 마음의 발달을 위한 자극을 받고 장차의 역경을 혼자서 처리해 나갈 준비를 갖춘다. ㈑ 진정한 교육은 보통의 교육체제에서 교육이 끝나는 시기인 청년기에 시작된다. 이 시기에 청년이, 학습해야할 최초의 과목은 이제 막 영혼에 용솟음치기 시작한 정념을 사회적 정조에 의하여 통제하는 것이다. 열여덟 살에 청년은 역사에 나타난 인간의 모습을 공부하며 종교에 관산 추상적 관념을 처음 접하게 된다. 스무 살에 그는 사회에 들어가서, 위대한 문학과 연극을 통하여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에 필요한 처신 방법을 배운다. 그러다가 이상적인 여성을 만나고 여행으로 정치를 배우고 세상 견문을 넓히며 마침내 결혼을 한다. 이것으로 그의 교육은 끝난다.

자아이와 여자아이를 기르는 데에 있어서‘성별차이’를 고려해야한다는 것은 루소가 말하는 ‘자연적 교육’의 제 1원리이다. 루소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의 본성은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며, 따라서 그들의 교육에 있어서도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성별차이에 관한 루소의 견해는, 남자의 경우에 자신이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할 것이 없는 삶의 우연적,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한 반면에, 여자는 언제나 여자이며 여자로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여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루소는, 남자아이는 가장 넓은 관심을 가진 완전한 인간으로 교육되어야 한다고 본다. 소녀의 교육에 관한 루소의 유일한 언급이 「에밀」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것은 그의 그러한 관점을 보여주는 예로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루소는 그의 교육소설의 주인공을 결혼 적령기까지 데리고 와서, 그 모범적 남성의 적합한 결혼 상대자인 소피의 양육에 관하여 무언인가 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루소가 ‘여자의 전 교육은 남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따금 역설과 과장으로 일그러져 있기는 하지만, 「에밀」은 18세기의 교육적 저작 중에서 비길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교육의 이론과 실제에 끼친 영향으로 판단한다면,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교육적 저작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에밀」은 나오는 즉시 여러 나라의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사소한 면에 있어서나 근본적인 면에 있어서나 할 것 없이 어디서나 아동과 청년 문제에 관한 깊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상류사회의 사교계 여성들은 어린아이들 자기 손으로 기르기 시작하였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를 에밀과 소피로 기르려고 하였으며, 부모들 중에서 남보다 열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갓난 아이 때부터 자녀에 관한 관찰기록을 일기로 써 나갔다. 귀족들 중의 상당수는(특히 독일에서)자기 집에다가 작업장을 설치하여 아들에게 기능 훈련을 시켰으며, 작가들은 젊은이를 위한 새로운 문학 작품을 내어 놓았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치가나 교육자와 같이, 교육에 심각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이었다. 심지어 루소의 원리에 대하여 전적으로 찬성하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이때까지의 그들의 태도와는 달리, 사회의 철저한 개혁을 위하여 교육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교육의 개선을 가져올 가능성을 보이는 새로운 방안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려하려는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더불어, 아동의 본성을 고려하지 않는 어떤 형태의 교육도 만족스러운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 관하여 일반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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