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북한 동명유치원 이야기

[뉴욕중앙일보/채수호/자유기고가·뉴저지=]

북한 최북단에 위치한 라선특별시 동명동에는 미주 한인이 운영하는 동명유치원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3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요충지 라선경제특구에 지난 2013년 문을 연 3층 건물의 동명유치원은 350명의 북한 어린이들과 40여 명의 현지인 교직원들의 보금자리이다.

동명유치원의 실질적인 원장인 뉴저지 메이플우드 성당의 조후연 야고보 신부는 유치원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어린이들에게 제공되는 급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하루 한 끼만이라도 영양이 풍부하고 맛있는 음식을 북한 어린이들에게 먹이기 위하여 최대한의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설립된 지 3년째인 동명유치원은 지금까지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어 미주 한인이 추진하는 대북 민간사업 중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조 신부는 앞으로 더 많은 북한 어린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제2 제3의 동명유치원을 설립하고 싶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

동명유치원의 뿌리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저지 최초의 한인 성당인 오렌지성당을 비롯해서 여러 개의 성당 설립을 주관하고 다섯 명의 사제를 배출한 원로신부 박창득 몬시뇰은 1989년 한인 신자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여 평양 장충성당에서 최초로 북한 천주교 신자들에게 미사를 집전하였다.

그후 극심한 식량난으로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목격한 박 몬시뇰은 민간 차원에서 북한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중의 하나가 평양 국수공장 사업이었다. 박 몬시뇰은 북한 주민들의 배고픔을 가장 빨리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단 1달러로 열여섯 그릇의 국수를 만들 수 있는 국수공장이 좋다는 데 착안하고 평양 국수공장 건설을 추진한다.

중국에서 들여온 기계로 1996년 11월 가동을 시작한 평양 국수공장은 매일 9000그릇의 국수를 생산하여 탄광과 농장 노동자들에게 공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열악한 전기 사정으로 공장의 정상가동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생산된 국수가 실제로 굶주림에 처한 민간인들에게 공급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평양 국수공장의 운영권은 결국 서울교구로 넘겼다.

박 몬시뇰은 그 후에도 수십 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라면공장 개량종 쌀 종자 보급 등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계속해서 추진하였다. 그러던 중 북한당국이 나진선봉지구(지금의 라선특별시)에 외국인의 유치원 설립을 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박 몬시뇰은 대북 지원사업의 방향을 일반인에서 어린이로 전환하고 2010년 10월 나진선봉지구에 유치원 건축공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 후 급작스런 건강악화로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워지자 박 몬시뇰은 이 사업의 추진을 자신이 배출한 '아들신부' 중 한 사람인 뉴저지 메이플우드 성당의 조후연 신부에게 맡긴다. 결혼을 하지 않는 천주교 신부들은 자신이 길러낸 신부를 '아들신부'라고 부른다.

지난 6월 13일 휠체어에 앉은 팔순의 박창득 몬시뇰은 조후연 신부와 함께 어쩌면 그의 생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북한 방문길에 올랐다. 항공편으로 중국 지린성 조선족 자치주 옌볜시에 도착한 이들은 이튿날 렌터카 편으로 두 시간을 달려 라선특별시 입경사무소에 도착하였다.

투병 중인 노구의 박 몬시뇰에게 장시간 항공여행과 육로이동은 무리였으리라. 그러나 그는 잘 먹고 마음껏 뛰어노는 북한 어린이들을 보면서 여독도 잊은 채 마냥 즐거워했다고 한다. 동명유치원을 떠나올 때 박 몬시뇰은 다시는 보지 못할 유치원 마당에 아들신부와 함께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 나무와 함께 민족화합과 용서와 사랑의 마음도 푸르게 푸르게 자라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