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5시간 수업령’에 분노… 유치원 교사들의 일상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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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아이미소연구소 | 작성일 | 2014-01-29 10:2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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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수업령’에 분노… 유치원 교사들의 일상은?
“자녀와도 못놀아줘…이해해주는 사람 없어 더 서러워”
▲ 유치원 교사 김하나(가명) 씨는 실명과 소속을 밝힐 수 없는 처지다. 사진은 `교육과정 5시간 강제지침 철회’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교조 광주지부 조정하 광주 유치원위원장.
[광주드리/강경남 기자=] “남들은 유치원 교사하면 그냥 애들하고 놀아주면 되는지 알아요. ‘좋은 직장 가졌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말도 많이 듣죠. 정말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교육부가 유치원 교육과정을 5시간으로 늘리려고 하자 전국 유치원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수업이 1~2시간 늘어날 뿐이지만 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죽어난다”고 호소한다.
지난 24일 여기에 동참하고 있는 유치원 교사 김하나(가명) 씨를 만났다. “하루 10~12시간씩 일하느라 떡실신 된다”는 유치원 교사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서였다. “제가 이야기 해주면 이해할 수 있겠어요?” 사전에 약속을 잡는데 김 씨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이랬다. 15년 가까이 유치원 교사 생활을 해온 그는 현재 북구의 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일이 힘들지 않았는데, 몇 년 전부터 너무 일이 많아졌어요. 사람들은 ‘애들하고 놀아주면 되지 뭐 힘들 게 있냐’고 하는데, 하루라도 유치원에 와서 생활해 보시면 절대 그런 말 못할 거예요.”
▶하루 10~12시간 근무 ‘떡실신’
대체 어떻게 일하길래 그렇게 힘이 들다고 하는 걸까? ‘유치원 교사’의 하루 일과를 들었다. “수업은 9시부턴데, 출근은 8시에 해야 해요. 출근하는 엄마들은 일찍 아이를 맡기러 오거든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5~7세. ‘홀로서기’엔 한참 어린 이들에겐 교사의 끊임없는 관심과 보살핌은 필수다.
매년 원생을 모집하면 오전 7시쯤에 아이를 맡기려고 하는 부모들도 많단다. “7시 이전에 출근하는 건 너무 무리에요. 그래서 매년 오리엔테이션 할 때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양해를 구하고 있죠.”
사실 김 씨 역시 5살된 딸이 있다. 김 씨가 오전 8시에 유치원을 찾는 아이들을 위해 일찍 나가면 그의 딸은 더 일찍 유치원으로 간다. “거기(딸이 가는 유치원)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시지만, 저 때문에 아침 일찍 출근하는 거잖아요. 그게 얼마나 힘든지 저도 아니까 너무 미안해요.”
김 씨가 일하는 유치원은 한 학급만 있다. 5~7세 아이들 혼합반으로 총 25명이 다닌다. “출근하고 수업이 시작되는 9시까지 뭐 하냐면 아이들이 일제히 오는 게 아니라 한 명 한 명 오거든요. 신발 벗어라 화장실 갔다 올래, 아침엔 뭐했니, 가방 챙기자, 옷 정리해라, 출석체크하자. 1시간 동안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이 얘기를 하는 거죠. 저는 그냥 앵무새에요. 쫑알쫑알대는 앵무새.” 아이를 받을 땐 ‘엄마’들의 요구사항도 챙겨야 한다. “어제 토했으니까 매운 거 먹이지 마세요. 죽만 먹이세요. 밥 먹고 나면 아이 꼭 약 먹어야 해요. 이런 것도 다 적고, 일지를 써야 돼요.”
▶출근, 뒤치닥거리, 점심도 전쟁
이렇게 그의 ‘전쟁같은 일과’는 시작된다. “1시간이 눈깜짝하면 지나가요.” 오전 9시 수업이 시작되면 아이들과 대화부터 나눈다. “유치원 수업은 교과서 펴놓고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을 끄집어 내는 게 중요하거든요. 어제 저녁에 뭐했니, 오늘은 비가 오네? 이런 얘기들로 수업을 시작해요. 그러고 나서 ‘자유선택활동’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원하는 활동을 선택해 자유롭게 흩어져서 소꿉놀이, 쌓기놀이, 퍼즐놀이, 책읽기를 하죠.” 아이들은 김 씨를 놔두지 않는다. ‘선생님 책 읽어주세요’ ‘선생님 소꿉놀이 같이 해요’ ‘저 화장실 갈래요’ ‘저 똥 닦아주세요’ ‘물 주세요’ 등 김 씨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고 말한다.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어요. 커피 타 놓은 것도 다 식어서 버리고 다시 타면 또 식어 있고. 그게 계속 반복돼요. 화장실 갈 시간은 말할 것도 없죠.”
오전 10시는 우유먹는 시간이다. 이 때 김 씨는 아이들의 우유를 일일이 뜯어서 빨대를 꽂아준다. “아직 어린 아이들은 우유 먹는 게 서투르거든요.” 우유를 먹다가도 선생님 저 (우유)흘렸어요 소리가 들리면 ‘출동’한다. 한 아이의 옷을 닦아주고 있으면 또 뒤에서 “저도 흘렸어요” 한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 시간. “점심 먹으러 갈 때도 전쟁을 치러요.” 아이들 줄세워서 급식소로 이동해 자리에 앉히고, 김 씨도 아이들 사이에 앉는다. “밥 먹을 때도 아이들 떠먹여 줘야 해요. ‘선생님 저 더 먹을래요’ ‘이거(김치) 잘라주세요’ ‘돈까스 잘라주세요’ 봐줄 게 너무 많아서 제 밥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라요. 진짜 급식 먹을 때 한 번 와서 보세요.”
밥을 먹고 나면 식판 정리하고, 아이들 줄 세워서 유치원으로 이동한다. 유치원에 가서는 아이들 양치질을 봐주고, 약 먹어야 하는 아이들도 챙겨야 한다.
오후 1시가 되면 김 씨가 맡은 정규 수업시간(교육과정)은 끝이 난다. 이후엔 ‘방과후 과정’으로 진행되고, 담당 강사가 아이들을 맡는다.
“그럼 저는 수업 했던 것들 정리하고 교실 옆 교사실로 가요. 그럼 오후 1시부터 4시30분까지 무슨 일을 하냐? 2~3월에는 유치원 연중 계획을 세워야 해요. 특히, 3월에는 세부적인 계획들도 다 세워야 해서 ‘칼 퇴근(4시30분 퇴근)’은 못해요. 거의 오후 6시30분에 퇴근하는데, 그 이후에도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혼자 유치원에 남아있기가 너무 무서워서 그 때는 퇴근해요. 4월에는 식목일 비롯해서 각종 행사들부터 현장학습 가야해요. 현장학습 하나 가는 것도 2월부터 전화해서 장소 예약하고, 3월에 계획서 올리고, 학부모들에 안내장 보내고, 버스 예약하고, 준비할 게 너무 많아요. 거기다 무슨 공문이 그렇게 많이 오는지, 진짜 공문에 치여 쓰러질 지경이에요. 정작 제일 많이 투자해야 하는 수업준비는 정말 할 시간이 없어요. 그것까지 하면 하루가 모자라죠.”
▶방과후 과정도 책임 떠맡기 일쑤
그렇다고 ‘1시~4시30분까지’ 김 씨가 업무 처리에만 몰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방과후 과정은 강사가 맡고 있지만, 교실에서 일 터지면 다 제 책임이에요. 일보다가 교실에서 사고나서 달려가는 상황은 다반사에요. 강사 분도 아이들에게 무슨 일 생기면 저한테 먼저 데리고 오고요. 저 없을 때 아이들 다치기라도 하면 발 동동 구르다가 학부모에게 전화하고, 제가 먼저 사과해야해요. 제가 아이를 보다가 사고가 난 게 아니더라도 무조건 ‘죄송합니다’부터 시작해야지 안 그러면 큰 일나요.”
가끔씩 방과후 담당 강사가 사정이 생겨 출근을 못할 때도 있다. “그러면 제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30분까지 혼자 수업하는 거죠. 업무는 정말 급한 공문이 아니면 거의 못 봐요. 퇴근 시간은 저 뒤로 미뤄지는 거죠.”
‘유치원 교사’로서의 하루를 정신 없이 보낸 김 씨는 집에 가면 녹초가 된다. “너무 말을 많이 해서 학기 중에는 성대 결절이 심해져요. 사실 아이들이 모여있는 교실이 시끄럽다 보니 귀에서 고름이 날 때도 있어요. 저는 완전히 ‘종합병원’이죠.”
그만큼 휴식이 그에겐 절실하지만, 어린 딸은 ‘엄마’가 함께 놀아주길 바란다. “집에 가면 제가 목이 아파서 거의 말을 안 해요. 제 딸이 하는 말이 ‘엄마는 (유치원)선생님이잖아. 나하고 놀아줘’라고 해요. 그럼 저는 ‘엄마 힘들어서 못 놀아줘’라고 할 수밖에 없죠. 진짜 제 딸이 너무 불쌍하고 짠해요.”
이렇게 김 씨가 힘든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라서다. “상식적으로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이죠. 가끔은 제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 너무 외롭다’구요. 유치원 교사가 남들 보기엔 ‘좋은 직장’인데 뭐가 그리 외롭고 힘드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 나름의 고충이 있죠. 하지만 아무리 하소연해도 사람들은 이해해주지 않아요. 특히, 교육부. 그들은 정말 유아교육이 뭔지 알기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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