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아름다운 이야기 23 <초보 엄마> | ||
---|---|---|---|
작성자 | iadmin2 | 작성일 | 2008-06-30 00:00:00 |
조회수 | 671회 | 댓글수 | 0 |
지금부터 29년 전, 1학년짜리 아들이 아침에 숙제검사를 해달라고 공책을 가져오면 나는 글씨가 엉망이라는 이유로 숙제장을 그 자리에서 쫙쫙 찢어버리고 다시 쓰게 하였다. 학교에 늦는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우는 아이에게 한석봉을 들먹이며 글씨를 잘 써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훈계까지 했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잔인한 엄마였지만 그때는 그것이 아이를 반듯하게 잘 키우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서투른 초보 엄마였다.
글씨를 잘 쓰는 것이 뭐가 훌륭한 일이냐고 따져 묻던 그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었고, 엄마와 선생의 공은 간 데 없이 컴퓨터 시대의 그 아이는 보란 듯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며 살고 있다.
내가 만일 한석봉 시대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좀 더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면 나는 그렇게도
잔인한 엄마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담임 선생님도 국어책을 수십 번씩 써오라는 쓸데없는 숙제로 아이를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다.
요즈음 젊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살아남게 하기 위하여 일찍부터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치느라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다섯 살짜리의 영어 교육을 위하여 대학 등록금보다도 더 많은 돈을 쏟아 붓고,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고 멀쩡한 아이의 혀 수술까지도 감행하며,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유아에게 영어 체험을 시킨다고 외국으로 연수를 보내는 경우도 종종 본다.
하버드대학의 스노 교수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은 실험을 통하여 외국어 학습은 유아기보다 아동기의 어린이들에게서 훨씬 효과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의 말보다는 외판원이나 광고를 더 신뢰하는 부모들이 10분도 지속적으로 앉아 있기 힘든 유아들을 붙잡아 앉혀놓고 낯선 외국인들로부터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배우도록 강요하고 있다. 신나게 뛰놀아야 할 시기에 외국어 몇 마디를 배우느라 안간 힘을 쓰고 있는 아이들은 보면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직 덜 발달된 미숙한 뇌에 서서히 과부하가 걸리게 되면 아이들이 언제 어떻게 망가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지금부터 30년쯤 후면, 굳이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한국어로 말을 해도 기계 하나만 귀에 꽂거나
단추 하나만 누르면 상대방에게는 그 나라 언어로 전달이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외국어를 잘하는 것이 별다른 능력이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될 때
나처럼 후회하는 엄마들이 없기를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