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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밥은 하늘이고, 배움은 그 속에 있다
작성자 iadmin 작성일 2007-09-03 00:00:00
조회수 1,115회 댓글수 0

생태유아공동체전국협의회 정책위원장

윤호창


지난 주에 아이들과 모내기를 다녀왔습니다. 아마 아이들의 90%는 논이라는 것을 몰랐을 테고, 99%는 그 본에 발을 담그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거의가 생애 첫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다양한 관계와 실험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흥분되지만, 통제와 가르침에만 익숙한 이들에겐 새로움 낯설고 힘들고 때론 고통스럽기도 하지요. 새로운 것에 대한 면역체계가 형성되지 않은 탓이지요.


거머리에 벌레에 주의를 들은 아이들은 다들 가져온 엄마스타킹을 하나씩 신고, 낯선 경험의 세계인 논바닥으로 들어갑니다. 선생님들이 잡아 끄는 손에 잠시 주저주저하더니 곧 보드라운 논바닥에 금방 익숙해지는 듯 합니다. 몇 발자국 가자말자 엄마의 스타킹은 벗겨지고 말지만, 첫 경험의 낯섬으로부터도 조금씩 벗어납니다.


나이 사십 줄에 접어든 나의 첫 경험도 그러했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끌려 못자리 논에 발을 들였을 때 엄마의 속살처럼 부드럽고, 아이스크림 시원한 초여름 논에 대한 유년의 기억. 삼십년이 훨 지났지만, 그 첫 경험의 기억이 가끔식 논에 발을 담글 때면 내장되어 있다가 수면 밖으로 나오는 듯 합니다. 첫 경험, 첫 사람, 첫 열매....언제나 첫이라는 것은 강렬하고, 짜릿하고, 시큼해 저장성이 오래가는 듯 합니다.


고도의 경험과 기술이 필요한 모내기를 이제 첫 경험을 한 아이들이 제대로 할 리 없습니다. 어린 벼들은 다시 농부의 손에 의해 심겨질 것이지만, 아이들은 논에 살고 있는 다양한 것들과 수많은 첫 경험의 관계들을 가졌습니다. 한 시간 남짓 모내기를 하고, 미꾸라지도 잡고 나니 아이들이 온통 진흙투성이입니다. 선생님들의 통제만 없었다면 아이들은 아마도 논과 일체가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해봤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아이들도 있었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농사를 짓는 것과 비슷합니다. 둘 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손끝에다 마음끝마다 정성을 다하고 조심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 관행에 익숙해진 농부들이 온갖 농약과 화학비료를 뿌리며 농사를 짓듯이, 우리 부모들도 조기교육, 학습지라는 성장촉진제에, 다양한 관계와 서로살림보다는 경쟁과 승자독식만을 생각하는 제초제에, 겉모양만 번지질하게 만드는 착색제를 열심히 뿌리며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경험케 해준 첫 경험을 생각하며 150여 어린 아이들과 앞으로 일년 동안 이 어린 벼들을 키워줄 태양과 바람과, 우렁이와 오리와 미꾸라지와, 농부의 땀과 수고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수많은 관계맺음을 생각하며 일년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일년 농사를 열심히 짓다보면 밥은 하늘이고, 공부는 그 속에 있으며, 아이들은 자연이고, 생명은 하나라는 것을 좀더 분명히 보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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